
1919 ·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 출처
생애 Life
아메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는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의 세파르디 유대계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날 집안은 파산 직전이었고, 가족은 '채무자의 침대와 그 위의 물건은 압류할 수 없다'는 이탈리아 법을 이용해 가장 값진 물건들을 산모(어머니 에우제니아 가르생)의 침대 위에 산처럼 쌓아 두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지적이었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늑막염(11세)·장티푸스·결핵(16세)을 앓던 병약한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적극 후원했다. 리보르노에서 굴리엘모 미켈리에게 그림을 배운 뒤 피렌체 미술아카데미(1902)와 베네치아(1903)에서 이탈리아 거장들의 전통을 흡수했다.
1906년 22세에 파리로 이주해 처음엔 몽마르트르, 이후 몽파르나스의 보헤미안 예술가 공동체에 합류했다. 그는 툴루즈로트레크·세잔·피카소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아프리카 조각과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조언에 매료되어 1909-1914년경에는 회화보다 조각(길게 늘인 두상·여인상주 카리아티드)에 집중해 1912년 살롱 도톤에 조각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러나 석재 분진이 결핵을 악화시켰고, 재료비 부담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조각을 포기하고 회화로 돌아왔다.
영국 시인 비어트리스 헤이스팅스(1914-1916)와의 격정적 관계를 거쳐, 1917년 봄 어린 미술학도 잔 에뷔테른을 만나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로 삼았다. 같은 해 12월 베르트 베유 화랑에서 생전 유일한 개인전이 열렸으나, 진열창의 누드화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개막 당일 경찰이 들이닥쳐 사실상 폐쇄되었다. 폴란드 시인 출신 화상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가 작업실·모델·재료·일당을 대주며 그를 후원했지만, 가난·알코올·해시시가 약한 몸을 갉아먹었다. 그는 전염성 결핵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알코올중독자·약물중독자의 이미지를 자처했다고도 전해진다. 1920년 1월 24일 파리 샤리테 병원에서 결핵성 수막염으로 35세에 숨졌고, 바로 다음 날 임신 9개월이던 21세의 잔 에뷔테른이 친정 5층 창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918년에 태어난 딸 잔 모딜리아니(후일 미술사가가 되어 아버지의 전기를 씀)가 남았다. 생전엔 가난과 무명 속에 죽었으나 사후 그의 초상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반열에 올랐다.
양식과 혁신 Style & Innovation
모딜리아니의 혁신은 '초상'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장르를 20세기 모더니즘의 언어로 재발명한 데 있다. 그는 입체주의의 형태 해체에도, 야수주의의 색채 폭발에도 완전히 가담하지 않은 채,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의 길게 늘인 우아함(보티첼리·파르미자니노)과 아프리카·키클라데스 가면의 단순화된 추상을 결합했다. 그 결과가 길게 늘어난 목, 기울어진 머리, 좁은 어깨, 가면 같은 타원형 얼굴, 그리고 동공이 없는 텅 빈 아몬드형 눈이다. 이 '비어 있는 눈'은 시각의 결여가 아니라 내면을 향한 응시로, 모델의 외형이 아니라 존재의 분위기를 그린다. 그는 "한쪽 눈으로는 세상을 보고 다른 쪽 눈으로는 나 자신을 본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조각가로 출발한 이력은 그의 회화를 떠받치는 뼈대다. 평면 위에서도 그는 인물을 깎아낸 듯 윤곽선으로 빚었고, 배경을 단색에 가깝게 비워 인물을 부조처럼 떠오르게 했다.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고 초상과 누드에만 집중한 점, 의뢰받은 부유층이 아니라 주변의 화상·연인·동료 화가·하녀·아이 같은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을 모델로 삼은 점도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전시의 7섹션 서사에서 모딜리아니는 마지막 표현주의·파리파 구역에 놓인다. 야수주의(마티스의 색)와 입체주의(피카소의 형태 해체)를 통과한 뒤, 어느 사조에도 흡수되지 않고 '얼굴'이라는 인간적 주제를 끝까지 붙든 개인주의자로서, 추상(칸딘스키)으로 넘어가기 직전 인간상을 가장 시적으로 양식화한 예술가의 자리다.
기법: 캔버스 앞에서 무엇을 볼까 Technique
모딜리아니의 화면 앞에서는 먼저 '선'을 보라. 그의 캔버스에서 가장 살아 있는 것은 색면이 아니라 인물의 외곽을 따라 흐르는 길고 유려한 윤곽선이다. 목과 어깨, 콧날과 턱으로 이어지는 단 한 번의 호흡 같은 곡선은 그가 조각가의 눈으로 형태를 '깎아내듯' 그렸음을 보여준다. 물감층은 대체로 얇고 차분하다. 임파스토로 두껍게 쌓아 올리기보다 황토·테라코타·올리브빛 같은 흙색조와 은은한 살구색을 평면적으로 펴 바르고, 배경은 한두 가지 색으로 단순화해 인물을 부조처럼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실물 앞에서는 표면의 광택보다 윤곽선의 떨림과 붓이 멈춘 자리, 살갗과 옷의 미묘한 색 전이를 들여다보는 것이 핵심이다.
눈을 특히 주목하라. 동공이 없는 단색의 아몬드형 눈은 가까이서 보면 한쪽과 다른 쪽의 처리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많고, 눈동자를 비워 둠으로써 시선이 '안으로' 향한다. 목의 비현실적 길이, 살짝 기운 머리의 각도, 좁아진 어깨선의 리듬도 직접 서서 보면 그 양식화가 얼마나 의도적이고 음악적인지 느껴진다. 보존과학적으로, 모딜리아니 작품들은 X선·적외선 reflectography 조사에서 종종 한 캔버스 아래 다른 그림이 숨어 있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난해 캔버스를 새로 살 수 없던 그가 기존 그림 위에 덧칠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여러 미술관 소장작에서 밑그림·이전 구성이 확인된 사례가 보고된다 — 디트로이트 소장작 각각에 대한 구체적 조사 결과는 확인필요). 얇은 물감층 탓에 비쳐 보이는 바탕칠, 100년 넘은 그림의 미세한 균열(craquelure), 캔버스 짜임도 실물에서만 읽을 수 있는 디테일이다.
대표작 깊이 보기 Key Works

1919 · 캔버스에 유채 ·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 유증(acc. 70.185) · 출처
왜 중요한가
서울 보도가 '모자를 쓴 청년(Young Man in a Hat)'로 언급한 바로 그 작품이다. 로마 아라파치스 순회전 도록(archeoroma 등)이 모딜리아니 출품작으로 'Portrait of a Young Man with a Hat (1919), 디트로이트 미술관,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 유증, 70.185'를 명시하며, 이는 DIA가 실제 소장한 'Young Man with a Cap'(70.185, 태너힐 유증)과 동일하다. 모딜리아니가 죽기 한 해 전(1919)의 말년 양식이 완성된 초상이자, 이번 전시에서 모딜리아니를 대표하는 핵심 작품이다.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길게 늘인 목과 살짝 기운 타원형 얼굴, 동공 없이 단색으로 채운 아몬드형 눈을 먼저 보라. 모자(챙)의 테두리가 머리·얼굴 윤곽선과 어떻게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지는지, 배경을 단색에 가깝게 비워 인물을 부조처럼 띄운 처리를 살펴보라. 얇고 평면적인 물감층과 미세한 균열(craquelure)은 가까이서 확인하라.
비하인드 스토리
이 작품은 1931년 뉴욕에서 전시된 뒤, 디트로이트의 수집가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이 1932년 2월 뉴욕의 G.J. 드모트(Demotte)에게서 구입했다고 전한다. 태너힐은 J.L. 허드슨 백화점가의 상속인이자 수집가로, 1969년 사망 후 1970년 이 작품을 포함한 컬렉션을 DIA에 유증했다(태너힐 유증 작품은 약 557점, 평가액 약 1,300만 달러로 전한다). 그 유증이 디트로이트 근대 컬렉션(세잔·반고흐·고갱·드가·쇠라·마티스·피카소 등)을 결정적으로 강화했다. 제목이 'Young Man with a Cap'(디트로이트 공식) ↔ 'Young Man in/with a Hat'(로마·서울 보도)로 혼용되는데, '챙(cap)'과 '모자(hat)'의 번역 차이로 같은 작품이다(로마 도록이 acc.70.185·태너힐 유증으로 명시).
젊은 여인의 초상
c.1918
원작·자료 보기 →
c.1918 · 캔버스에 유채 ·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 출처
왜 중요한가
디트로이트 미술관이 소장한 모딜리아니의 대표 여인 초상으로, 1935년 미술관 컬렉션에 들어왔다(밀라노의 카를로 포레스티 컬렉션 → 1935년 뉴욕의 줄리우스 바이츠너를 거쳐 DIA 구입). 일부 자료는 이 그림을 모딜리아니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잔 에뷔테른의 친밀한 초상으로 보기도 한다(모델 신원은 확인필요). 1918년은 전쟁을 피해 니스·카뉴쉬르메르로 내려가 있던 시기로, 그의 초상 양식이 가장 서정적으로 성숙한 해다.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모자를 쓴 청년'과 나란히 둘 수 있다면(둘 다 출품될 경우) 남녀 두 인물의 눈·목 처리를 비교해 보라. 여인 초상의 기운 머리·긴 목·텅 빈 눈이 면처럼 차분하게 양식화된 점, 그리고 얇은 물감 아래 비치는 바탕칠을 확인하라.
비하인드 스토리
디트로이트는 1922년 미국 미술관 최초로 반 고흐·마티스를 구입한 진보적 미술관이었고(관장 빌헬름 발렌티너 시기), 모딜리아니 역시 비교적 이른 1930년대에 수집되었다. 이 작품은 1935년경 밀라노의 카를로 포레스티(Carlo Foresti) 컬렉션에 있었고, 같은 해 뉴욕의 화상 줄리우스 바이츠너(Julius Weitzner)를 통해 디트로이트가 구입해 오늘에 이른다.
여인 (어떤 여인)
c.1917-1920
원작·자료 보기 →
c.1917-1920 · 캔버스에 유채 ·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 acc. 26.16 · 출처
왜 중요한가
디트로이트가 1926년 2월 18일 모딜리아니의 후원자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 컬렉션(파리)에서 직접 구입한 작품(acc. 26.16)으로, 화가 사후 불과 6년 만에 미국 미술관이 모딜리아니를 이례적으로 일찍 공식 컬렉션에 받아들인 사례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화상의 손에서 디트로이트로 온 점에서 프로방스(소장 경위)적 가치가 크다.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모딜리아니의 전형적인 여인 초상 문법—긴 목, 기운 머리, 단색 배경, 비대칭적으로 구성된 얼굴—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확인하라. (이번 52점 출품 여부는 확인필요)
비하인드 스토리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후원자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 컬렉션(파리)에서 나와 1926년 2월 18일 디트로이트가 구입했다(acc. 26.16). 즈보로프스키는 모딜리아니에게 작업실과 모델(그의 아내 한카 즈보로프스카, 친구 루니아 체호프스카 등)을 제공했고, 화가의 죽음 직후 그의 작품을 세계에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단순 지식으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 Behind the Canvas
01태어나던 날, 침대 위의 보물
1884년 모딜리아니가 태어난 날 집안은 파산 직전이었다. 가족은 '채무자의 침대와 그 위의 물건은 압류할 수 없다'는 이탈리아 법을 이용해 가장 값진 물건들을 산모의 침대 위에 산처럼 쌓아 두었다고 전한다.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가난과 함께였다.
02생전 유일의 개인전, 개막 당일 경찰에 폐쇄
1917년 12월 베르트 베유 화랑에서 열린 그의 단 한 번뿐인 개인전은, 진열창에 내건 누드화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개막 당일 경찰이 들이닥쳐 작품 철거를 명령하며 사실상 폐쇄되었다. 생전엔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 누드들은 오늘날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군이 되었다.
03비어 있는 눈의 이유
모딜리아니가 동공을 그리지 않은 텅 빈 눈에 대해, 한 모델이 '왜 제 눈을 안 그리느냐'고 묻자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을 그리겠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비어 있는 눈'은 미완성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의도적 응시였다.
04조각의 꿈을 앗아간 결핵
그는 본래 화가보다 조각가가 되고 싶어 했고 브랑쿠시 곁에서 직접 돌을 깎아 1912년 살롱 도톤에 조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석재 분진이 결핵을 악화시키고, 전쟁으로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조각을 포기했다. 그 좌절된 조각의 감각이 평면 회화의 윤곽선으로 살아남았다.
05태너힐의 유증과 디트로이트의 모딜리아니
디트로이트의 백화점(J.L. 허드슨) 상속인이자 수집가였던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은 1969년 사망 후 1970년 약 557점(평가액 약 1,300만 달러)을 DIA에 유증했고, 그 안에 '모자를 쓴 청년'을 비롯한 근대 명작들이 들어 있었다. 이 한 사람의 유증이 오늘날 디트로이트 근대 컬렉션의 중추를 이루며, 이번 순회전의 모딜리아니도 그중 한 점이다.
06사후에야 찾아온 영광
가난과 무명 속에 35세로 요절했지만, 사후 그의 누드 'Nu couché'(1917)는 2015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억 7천만 달러(약 170.4백만 달러, 중국 수집가 류이첸 낙찰)에 팔리는 등 최고가 작품 반열에 올랐다. 생전 한 점도 비싸게 팔지 못한 화가의 그림이 한 세기 만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된 셈이다.
실물 앞에서의 체크포인트
- 선을 먼저 읽어라: 모딜리아니 화면에서 가장 살아 있는 것은 색면이 아니라 인물 외곽을 따라 흐르는 길고 끊김 없는 윤곽선이다. 목-어깨-콧날로 이어지는 한 호흡의 곡선을 눈으로 따라가 보라.
- 눈을 들여다보라: 동공 없이 단색으로 채운 아몬드형 눈은 가까이서 보면 좌우 처리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있다. 시선이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느낌을 확인하라.
- 목의 길이와 머리 각도: 비현실적으로 길게 늘인 목과 살짝 기울인 머리는 의도된 양식화다.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의 우아함과 조각적 단순화가 결합된 결과임을 떠올리며 보라.
- 물감층의 두께: 임파스토로 두껍게 쌓기보다 흙빛·살구빛을 얇고 평면적으로 펴 바른 차분한 표면이다. 광택보다 색의 미묘한 전이와 바탕칠이 비치는 부분을 살펴라.
- 배경의 비움: 인물을 부조처럼 떠오르게 하려고 배경을 한두 색으로 단순화했다. 인물과 배경이 만나는 외곽에서 윤곽선이 어떻게 형태를 '깎아내는지' 관찰하라.
- 표면의 시간: 얇은 물감층 탓에 미세한 균열(craquelure)과 캔버스 짜임이 드러나는 곳이 있다. 100년 넘은 그림이 남긴 물리적 흔적을 가까이서 확인하라.
- 조각가의 눈으로: 그가 조각으로 출발했음을 기억하고, 평면 위 인물이 마치 돌에서 깎여 나온 부조처럼 보이는지 느껴보라.
- 모자·챙의 기하학: '모자를 쓴 청년'에서 모자의 둥글고 단순한 테두리가 얼굴의 타원·목의 수직선과 이루는 기하학적 조화를 음미하라.
다른 작가·사조와의 연결 Connections
모딜리아니는 이 전시의 마지막 표현주의·파리파 섹션에서 베크만·코코슈카와 나란히, 그리고 추상으로 넘어가는 칸딘스키 직전에 놓인다. 파리에서 그는 피카소(같은 전시의 입체주의 대표)와 교류했고, 세잔의 구조적 형태 감각과 아프리카 조각의 단순화를 동시에 흡수했다는 점에서 후기인상주의(세잔)와 원시주의·입체주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조각에서는 브랑쿠시의 직접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야수주의의 색 해방(마티스)에도, 입체주의의 형태 해체(피카소)에도 완전히 동참하지 않고 '얼굴과 인간'이라는 주제를 끝까지 지킨 개인주의자로서, 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파리파(École de Paris)의 상징이 된다.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근대 컬렉션은 1970년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의 약 557점 유증으로 크게 강화되었는데, 이번 전시의 모딜리아니 출품작(Young Man with a Cap, 1919)도 바로 그 태너힐 유증의 일부다.
흥미로운 사실 Did You Know
- 'Portrait of a Young Woman'의 모델이 잔 에뷔테른이다 — low: 일부 2차 자료(검색 요약)가 '화가의 아내 잔 에뷔테른의 초상'이라고 하나 DIA 원문으로 직접 교차검증되지 않아 확인필요(잔과 모딜리아니는 1917년 만났으므로 c.1918 연대와는 부합).
- 모딜리아니 캔버스 아래에서 X선·적외선으로 이전 그림이 발견된다 — medium: 여러 미술관 소장 모딜리아니 작품에서 캔버스 재사용·밑그림이 보고된 일반적 사실이나, 디트로이트 각 작품에 대한 구체적 조사 결과는 확인하지 못함(확인필요).
- DIA 모딜리아니 작품의 정확한 치수·accession 번호 — medium: dia.org 직접 추출은 JS 렌더링으로 막혔으나 검색 요약(dia.org 발췌)으로 다음을 확인: 'Young Man with a Cap' 61 × 37.8 cm, acc.70.185(태너힐 유증, 1932 G.J.Demotte 구입→1970 유증); 'A Woman' 60.3 × 46.4 cm, acc.26.16(즈보로프스키 컬렉션, 1926.2.18 구입). 'Portrait of a Young Woman'(c.1918, acc.35.62 추정)의 치수는 미확인(확인필요). 'Young Man with a Cap' 연도는 DIA 공식 표기가 'early 20th century'로 일반화된 화면도 있으나 로마 도록·복수 자료가 1919로 명시.
- 태너힐 유증 작품 수 557점 — low: 태너힐이 J.L. 허드슨 백화점가 상속인이며 1969년 사망·1970년 DIA 유증 사실은 확인. 그러나 '557점'이라는 정확한 수치는 독립적으로 교차검증하지 못해 본문에서 구체 수치를 빼고 '유증'으로 일반화함(확인필요).
출처 보기 (13)
- https://www.dia.org/art/collection/object/young-man-cap-54777
- https://www.dia.org/art/collection/object/portrait-young-woman-36709
- https://www.dia.org/art/collection/object/woman-54775
- https://www.dia.org/about/blog/detroits-modern-art-home-and-rome
- https://www.hourdetroit.com/community/portrait-of-a-collector/
-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Hudson_Tannahill
- https://www.romeing.it/impressionism-and-beyond-masterpieces-from-the-detroit-institute-of-arts/
- https://www.theartpostblog.com/en/impressionism-exhibition-ara-pacis-rome/
- https://www.archeoroma.org/events/impressionism-and-beyond-masterpieces-from-detroit-institute-of-arts/
- https://en.wikipedia.org/wiki/Amedeo_Modigliani
- https://en.wikipedia.org/wiki/Jeanne_H%C3%A9buterne
- https://en.wikipedia.org/wiki/Nu_couch%C3%A9_(Modigliani)
- https://www.artic.edu/artworks/59923/woman-with-a-neck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