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6 ·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s) · 출처
생애 Life
앙리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섣달그믐) 프랑스 북부 노르 지방의 르 카토캉브레지(Le Cateau-Cambrésis)에서 부유한 곡물상의 맏아들로 태어나, 인근 보앵앙베르망두아에서 자랐다. 화가가 될 운명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1887년 파리로 가 법학을 공부하고 자격을 딴 뒤 고향 인근 법원의 사무 보조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결정적 전환은 1889년 찾아왔다. 맹장염으로 오래 누워 회복하던 시기에 어머니가 무료함을 달래라고 그림물감 상자를 사다 주었는데, 붓을 든 순간 그는 훗날 "일종의 낙원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법률을 버리고(아버지를 크게 실망시키며) 1891년 파리로 돌아가 아카데미 쥘리앙(부그로 문하)과 에콜 데 보자르의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화실에서 배웠다. 모로는 학생들에게 루브르에서 거장을 모사하게 하면서도 각자의 시야(vision)를 따르라고 가르쳤다.
1896년, 무명 학생이던 마티스는 브르타뉴 앞 벨일(Belle-Île) 섬에서 호주 출신 화가 존 러셀(John Russell)을 만나 인상주의와 반 고흐를 처음 접했다. 러셀은 그에게 색채 이론을 설명하고 반 고흐 드로잉 두 점을 주었다. 그의 팔레트는 흙빛에서 밝은 색으로 완전히 바뀐다. 1898년 아멜리 파레르(Amélie Parayre)와 결혼했고, 신인상주의의 점묘(시냐크·크로스)와 반 고흐·고갱·세잔의 비자연주의 색을 잇따라 흡수했다. 마티스는 집에 로댕 조각, 고갱 그림, 반 고흐 드로잉, 그리고 세잔의 '세 명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걸어두었는데, 특히 세잔의 회화적 구조에서 평생의 영감을 얻었다.
1905년 콜리우르에서 앙드레 드랭과 함께 여름을 보내며 순수색의 회화를 완성한다. 그해 가을 살롱 도톤에서 그의 '열린 창'과 '모자를 쓴 여인'을 본 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이 전시실의 르네상스풍 조각을 두고 "야수들 사이의 도나텔로(Donatello chez les fauves)"라고 빈정댔고(『질 블라스(Gil Blas)』, 1905년 10월 17일), 여기서 '포비즘(야수주의)'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물감통을 대중의 얼굴에 끼얹었다"는 혹평이 쏟아졌지만, 거트루드·레오 스타인 남매가 '모자를 쓴 여인'을 사들이며 그를 떠받쳤다. 이후 마티스는 '삶의 기쁨'(1905–06), '춤(La Danse)'(1909–10, 슈킨 주문), '붉은 화실'(1911)로 평면적 장식성을 밀고 나갔고, 1912–13년 모로코 여행 뒤 검정을 '하나의 색'으로 쓰기 시작했다. 1917년 무렵부터는 니스로 옮겨(이후 시미에 거주) '니스 시기'를 열어 오달리스크 실내화를 그렸다. 말년에는 1941년 십이지장암 수술 후 붓을 들기 어려워지자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이는 '컷아웃(papiers découpés)'을 발명했고, 그 정점이 화집 '재즈(Jazz)'(1947)와 방스의 로사리오 성당(1948–51)이다. 마티스는 1954년 11월 3일 니스(시미에)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양식과 혁신 Style & Innovation
마티스가 미술사에 일으킨 혁명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 그는 색을 '사물의 묘사'라는 의무에서 풀어주었다. 그 이전까지 색은 '나뭇잎은 초록, 살은 분홍'이라는 국소색(local color)의 노예였다. 마티스는 색을 자율적 표현 수단으로 만들었다. 얼굴에 초록 띠를 긋고 그림자를 붉게 칠한 것은 그렇게 보여서가 아니라, 그 색이 화면 안에서 만들어내는 균형과 감정이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표현은 인물의 얼굴이나 격렬한 몸짓에 있지 않다. 표현은 내 그림의 배치 전체 — 인물이 차지하는 자리, 그 둘레의 빈 공간, 비례 — 모든 것이 제 몫을 하는 데 있다"고 썼다(『화가의 노트(Notes d'un peintre)』, 1908). 색면(色面)·평면성·장식적 리듬·아라베스크가 그의 어휘였고, 후기에는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드로잉(형태)'과 '회화(색)'를 한 번의 동작으로 합쳐버린 컷아웃까지 발명했다.
이 전시의 7섹션 서사 속에서 마티스는 다섯 번째 장(章) '야수주의 — 색채의 해방'의 주인공이다. 쿠르베의 사실주의(1섹션)에서 출발해 인상주의의 빛(르누아르·드가, 2섹션), 후기인상주의의 감정과 구조(반 고흐·세잔, 3섹션), 상징주의(4섹션)를 거쳐 온 관객은, 마티스에 이르러 색이 마침내 자연의 모방이라는 마지막 사슬을 끊는 장면을 목격한다. 실제로 마티스 자신이 집에 세잔과 반 고흐를 걸어두고 그것을 자양분 삼았으니, 3섹션은 마티스의 직접적 전사(前史)다. 그리고 그의 색 실험은 곧장 6섹션 피카소·브라크의 입체주의(형태의 해체)로, 다시 7섹션 칸딘스키의 추상('흰 형태를 위한 회화 연구', 1913)으로 이어진다. 마티스와 피카소는 흔히 20세기 미술의 양대 축으로 불린다 — 한 사람은 '색'으로, 다른 한 사람은 '형태'로 회화를 재발명했다. 둘은 1906년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서 처음 만나 평생 라이벌이자 가장 깊이 서로를 이해한 동료가 되었다. DIA가 1922년 같은 해에 '미국 미술관 최초'로 마티스 '창문'과 반 고흐 '밀짚모자 자화상'(1887)을 사들인 사건은, 이 전시가 보여주는 모더니즘 컬렉션의 선구적 안목을 상징한다.
기법: 캔버스 앞에서 무엇을 볼까 Technique
마티스의 캔버스 앞에서는 '무엇을 그렸나'보다 '색면이 어떻게 짜여 있나'를 먼저 보아야 한다. 첫째, 색면(color plane). 그는 색을 넓고 평평하게, 붓 자국이 두드러지지 않게 칠해 화면을 장식적 평면으로 만들곤 했다. 인상주의의 자잘한 점·터치와 달리 마티스의 색은 종종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넓은 들판'처럼 펼쳐진다. 둘째, 보색 대비. 빨강 옆의 초록, 파랑 옆의 주황을 나란히 놓아 색이 서로를 밀어내며 진동하게 만든다. '창문'(1916)에서 마티스 자신이 "그림은 초록과 흰색에 몇 군데 강조 — 물망초의 파랑, 양탄자 지그재그의 빨강, 그리고 빨간 탁자"라고 설명했듯이, 차분한 면들 사이에 박힌 소수의 강한 색점(파랑·빨강)을 찾아보라.
둘째, '고쳐 그린 흔적'을 찾아라. 마티스는 즉흥의 천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끝없이 고친 화가였다. 그는 같은 화면을 몇 달씩 긁어내고 다시 칠했으며('큰 기대 누드(Large Reclining Nude / Pink Nude)'(1935, 볼티모어 미술관)는 22장의 사진으로 수정 과정을 기록했다), 보존과학(X선·적외선 reflectography)으로 그의 그림 아래에서 사라진 인물·다른 구도가 자주 드러난다(MoMA '붉은 화실' 연구가 대표적). 1916년 전후 '엄격하고 실험적인 시기'의 작품은 회색·검정·청록을 강하게 쓰며 두텁게 다시 칠한 부분이 많으므로, 실물에서는 표면을 비스듬히 보며 이전 물감층의 융기, 윤곽선을 옮긴 자국, 긁어낸 자리의 미세한 결을 살펴보라.
셋째, 매체의 물성. '창문'은 유화이지만, 마티스가 1912–13년 모로코 이후 검정을 적극 쓰기 시작한 점, 그리고 화면을 '안과 밖'으로 가르는 건축적 골조가 핵심이다. 말년 컷아웃은 조수들이 과슈로 균일하게 칠한 종이를 마티스가 가위로 단번에 오려 핀으로 고정한 것으로, 종이 가장자리의 가위 결과 겹친 색종이의 미세한 그림자가 '회화이자 조각'인 이 매체의 본질이다. 마지막으로 마티스는 작품이 벽·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배치)를 표현의 일부로 여겼으므로, 전시장에서 한 발 물러나 색면 전체의 '리듬'을 한눈에 담아보는 것이 그의 의도에 가장 가깝다.
대표작 깊이 보기 Key Works

1916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s), 소장번호 22.14, City of Detroit Purchase · 출처
왜 중요한가
이번 전시 마티스의 대표작이자 핵심. 로마 순회전(Romeing) 공식 소개에서 이번 52점에 마티스 회화 세 점 — '창문(Window, 1916)', '커피(The Café, 1916)', '양귀비(Poppies, c.1919)' — 이 포함됨이 명시되었다. 파리 근교 이시레물리노(Issy-les-Moulineaux)에 있던 마티스 자택의 식당(dining room) 실내에서 창을 통해 정원을 내다보는, '창(窓)'이라는 마티스 평생의 주제를 담았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1922년 디트로이트 미술관이 사들여 '미국의 어느 미술관이든 통틀어 구입한 최초의 마티스 회화'가 된 역사적 작품이다. 작품 제작 연도(1916)와 미술관 구입 연도(1922)가 종종 혼동되니 유의.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창틀이 화면을 안과 밖으로 가르는 건축적 구조를 먼저 보라. 마티스 자신의 설명대로 '초록과 흰색' 바탕에, 탁자 위 물망초(myosotis)의 파랑, 양탄자 지그재그의 빨강, 빨간 탁자가 소수의 강한 강조로 박혀 있다. 정원의 검은 나무줄기, 정원용 의자도 찾아보라. 1916년 전후 마티스 특유의 절제된 회색·검정과 두텁게 다시 칠한 면, 평평하게 짜인 색면이 깊이감을 거의 평면적 장식으로 환원한 점을 음미하라.
비하인드 스토리
1913–1917년은 마티스의 가장 '엄격하고 실험적인' 시기로, 큐비즘과 추상의 압박 속에서 화면을 단순하고 건축적으로 다스리던 때다. 캔버스 뒷면엔 'H. Matisse, Issy (Seine)'와 함께 원제 '실내(물망초) 1916'이 적혀 있다. 마티스는 작품을 이렇게 묘사했다: '식당 창을 통해 정원의 초록과 검은 나무줄기, 탁자 위 물망초 바구니, 정원 의자와 양탄자가 보인다… 그림은 초록과 흰색에 몇 군데 강조 — 물망초의 파랑, 양탄자 지그재그의 빨강, 탁자도 빨강이다.' 이 그림은 1922년 1월 30일 뉴욕 아메리칸 아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rt Association) 경매에서 디트로이트 미술관이 낙찰받았으며, 같은 해 미국 미술관 최초로 반 고흐 '밀짚모자 자화상'(1887)을 사들인 사건과 짝을 이뤄 DIA가 얼마나 일찍 근대미술을 받아들였는지를 증언한다.
커피 (카페)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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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s), 로버트 H. 태너힐 유증, 소장번호 70.174 · 출처
왜 중요한가
DIA가 소장한 또 다른 1916년 마티스 회화로, 로마 순회전 자료에 이번 52점 출품작('The Café')으로 명시되었다. '창문'과 같은 해, 같은 실험적 시기의 작품으로, 두 인물(앉은 여인과 흰옷의 시중드는 인물)이 파란 배경 앞에 놓인 장면이다. 마티스의 절제된 색면과 단순화된 형태, 북아프리카·'오리엔트'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1970년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Robert Hudson Tannahill)의 유증으로 DIA 근대 컬렉션이 대폭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창문'과 나란히 놓고, 1916년 마티스가 색을 얼마나 절제하고 형태를 평면화했는지 비교해 보라. 화면을 지배하는 넓은 파란 면과, 그 위에 놓인 흰옷 인물의 윤곽을 음미하라.
비하인드 스토리
DIA의 마티스 회화는 '창문'(1916, 1922년 구입), '커피'(1916, 태너힐 유증), '양귀비(Poppies)'(c.1919) 세 점이 핵심이다. 태너힐 유증(1970)은 세잔·반 고흐·고갱·드가·쇠라·마티스·피카소를 아우르는 근대 컬렉션을 DIA에 안긴 결정적 기증이었으며, 작품 매각을 금지하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모자를 쓴 여인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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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SFMOMA) · 출처
왜 중요한가
야수주의의 '탄생 증명서'. 1905년 살롱 도톤에 '열린 창'과 함께 걸려 비평가 루이 보셀의 '야수들' 발언을 촉발했고, 거기서 '포비즘'이라는 사조 이름이 생겨났다. 마티스 양식 혁명(색의 해방)을 한 점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 5섹션(야수주의)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필수. DIA 소장품도 출품작도 아니지만 맥락 작품으로 알아두면 좋다.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모델인 아내 아멜리의 얼굴에 그어진 초록·보라의 띠, 자연색을 완전히 무시한 거친 색면. '왜 이런 색을 썼냐'는 질문에 마티스는 '그림이 그것을 요구했다'고 답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시 직후 거트루드와 레오 스타인 남매가 이 그림을 구입했다. 당시 마티스 가족은 장인의 휨베르 사기 사건 연루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고, 이 판매와 스타인·콘 자매·슈킨의 후원이 그를 구제했다. 작품은 레오·거트루드 스타인을 거쳐 마이클·세라 스타인 부부, 이후 엘리스 B. 토클라스 등의 손을 거쳐 결국 SFMOMA에 안착했다.
춤 (라 당스)
1909–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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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10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번째 버전, 1910); 첫 버전(1909)은 뉴욕 MoMA · 출처
왜 중요한가
마티스 회화의 정점이자 모더니즘 회화의 아이콘. 단 세 가지 색(하늘의 파랑, 언덕의 초록, 춤추는 인체의 주홍)만으로 거대한 화면을 구성해 색면·리듬·평면성이라는 그의 모든 원리를 집약했다. DIA 소장도 이번 출품도 아니지만 마티스 이해에 핵심인 비교 기준.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세부 없이 단순화한 인체의 윤곽과 원을 그리며 도는 동세, 단 세 색의 대담한 평면. 인물의 끊긴/맞잡은 손이 만드는 긴장감.
비하인드 스토리
러시아 수집가 세르게이 슈킨이 모스크바 저택 계단을 위해 '춤'과 '음악'을 주문했다. 슈킨은 처음엔 누드의 노골성에 망설였으나 결국 두 점 모두 받아들였고, 그 덕에 마티스의 가장 야심찬 장식 회화가 탄생했다.
재즈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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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 스텐실(포쇼아르) 화집, 컷아웃 기반 (Pochoir prints after paper cut-outs) · 여러 미술관 소장(MoMA 등) · 출처
왜 중요한가
말년의 발명품 '컷아웃(가위로 그리기)'의 대표작. 1941년 암 수술 후 붓을 들기 어려워진 마티스가 색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새 매체로, '이카루스(Icarus)' 등 상징적 이미지를 담았다. 마티스의 마지막 혁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디자인·그래픽·추상미술에 큰 영향을 남겼다.
👁 감상 포인트 — 이렇게 보세요
순수하고 균일한 색면, 가위가 만든 날카롭고 즉흥적인 윤곽. 마티스는 이를 '가위로 직접 색을 조각한다'고 표현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1941년 십이지장암 대수술 후 마티스는 자신을 '제2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 불렀다. 침대와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가위와 색종이라는 단순한 도구로 가장 활기찬 작업을 쏟아냈다. 이 에너지가 곧 방스 로사리오 성당으로 이어진다.
단순 지식으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 Behind the Canvas
01법률 서기가 화가가 된 순간 — '일종의 낙원'
마티스는 화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던 법률 사무 보조였다. 1889년 맹장염으로 오래 누워 지낼 때 어머니가 그림물감 상자를 사다 주었고, 처음 붓을 든 순간 그는 '일종의 낙원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스무 살이 넘어 진로를 완전히 뒤집은 늦깎이 출발이, 역설적으로 그를 누구의 양식도 답습하지 않는 독창적 화가로 만들었다(아버지는 크게 실망했다).
02'야수(Fauve)'라는 이름은 비웃음에서 나왔다
1905년 살롱 도톤에서 마티스·드랭 등의 강렬한 색 그림들이 한 전시실에 모였는데, 그 가운데 르네상스풍의 얌전한 청동 조각이 함께 놓여 있었다. 비평가 루이 보셀이 '순수 색조의 난장판' 속 그 조각을 두고 '야수들 사이의 도나텔로'라 빈정거린 데서(『질 블라스(Gil Blas)』, 1905년 10월 17일) '포비즘(야수주의)'이라는 사조명이 탄생했다. 조롱이 미술사의 한 챕터 이름이 된 셈이다.
03디트로이트가 미국 최초로 마티스를 샀다 — 그것도 시(市) 예산으로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1922년 '창문'을 City of Detroit Purchase(소장번호 22.14)로 사들여, 미국의 어느 미술관이든 통틀어 마티스 회화를 구입한 최초의 기관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1922년 1월, 뉴욕에서 열린 딜러 디크란 켈레키안(Dikran Kelekian) 컬렉션 경매(American Art Association)에서 미술관 측(시 미술위원회 위원장 랠프 H. 부스)이 마티스 '창문'(1월 30일)과 반 고흐 '밀짚모자 자화상'(1887, 1월 31일 lot 100)을 잇따라 낙찰받았다 — 둘 다 미국 공공 컬렉션에 들어온 해당 작가의 첫 회화였다. 모더니즘이 아직 미국에서 낯설던 시절의 대담한 안목이었다.
04마티스가 직접 써 남긴 '창문' 설명
마티스는 '창문'을 이렇게 묘사했다. '식당 창을 통해 정원의 초록과 검은 나무줄기, 탁자 위 물망초(myosotis) 바구니, 정원 의자와 양탄자가 보인다… 그림은 초록과 흰색에 몇 군데 강조 — 물망초의 파랑, 양탄자 지그재그의 빨강, 그리고 빨간 탁자.' 그래서 캔버스 뒷면의 원제도 '실내(Les Myosotis, 물망초) 1916'이다. 화가 본인의 색 처방전을 들고 실물 앞에서 하나씩 짚어볼 수 있는 드문 작품이다.
05병상에서 발명한 '가위로 그리기'
1941년 암 대수술 뒤 마티스는 붓을 오래 들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는 절망 대신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이는 '컷아웃'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냈다. 침대에 누워 긴 막대 끝에 목탄을 붙여 벽에 드로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시기를 '제2의 삶'이라 불렀고, 그 끝에 남프랑스 방스의 로사리오 성당(1948–51)을 자신의 '걸작'으로 남겼다.
실물 앞에서의 체크포인트
- '무엇을 그렸나'보다 '색면이 어떻게 짜여 있나'를 먼저 보라. 마티스에게 주제는 핑계이고, 진짜 작품은 색과 색의 관계다.
- 보색을 찾아라. 빨강 옆의 초록, 파랑 옆의 주황이 서로를 밀어내며 진동하는 자리가 화면에 생기를 준다.
- '창문'(1916)에서는 마티스 본인의 설명을 따라가 보라 — '초록과 흰색' 바탕에 물망초의 파랑, 양탄자 지그재그의 빨강, 빨간 탁자. 소수의 강한 색점이 박힌 위치를 짚어보라.
- 창틀이 화면을 '안(식당 실내)'과 '밖(정원·검은 나무줄기)'으로 가르는 건축적 구조와, 깊이감을 거의 평면적 장식으로 환원한 방식을 관찰하라.
- 표면을 비스듬히 보며 '고쳐 그린 흔적'을 찾아보라. 마티스는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끝없이 긁어내고 다시 칠한 화가다. 1916년 전후 작품엔 두텁게 덧칠한 부분이 많다.
- 붓 자국이 두드러지지 않게 칠해진 넓고 평평한 색면에 주목하라. 인상주의의 자잘한 터치와 정반대로, 마티스의 색은 윤곽으로 둘러싸인 들판처럼 펼쳐진다.
- 한 발 물러나 화면 전체의 '리듬'을 한눈에 담아보라. 마티스는 인물이 차지하는 자리와 그 둘레 빈 공간까지 표현의 일부로 계산했다.
- 마티스를 피카소(형태 해체)·칸딘스키(추상)와 나란히 놓고 보라. '색으로 회화를 재발명한 사람'이라는 그의 위치가 전시 동선 속에서 또렷해진다.
다른 작가·사조와의 연결 Connections
이 전시에서 마티스는 야수주의(5섹션)의 수장으로 '색의 해방'이라는 단계를 담당한다. 그의 직접적 전사(前史)는 3섹션 후기인상주의다 — 반 고흐의 감정적 색과 세잔의 색면 구조가 없었다면 마티스의 순수색도 없었다(마티스는 실제로 집에 세잔의 '세 명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걸어두고 평생의 영감으로 삼았다). 야수주의 동료 앙드레 드랭(같은 5섹션)은 1905년 콜리우르에서 그와 함께 색의 혁명을 완성했다. 마티스의 색 실험은 곧장 6섹션 피카소·브라크의 입체주의(형태 해체)로 이어지고, 다시 7섹션 칸딘스키의 추상('흰 형태를 위한 회화 연구', 1913)이 회화를 완전히 비대상화한다. '색의 마티스 / 형태의 피카소'는 20세기 미술의 두 축으로, 1906년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서 만나 평생 라이벌이자 동료가 되었다. DIA 차원에서는 1922년 같은 해에 마티스 '창문'과 반 고흐 '밀짚모자 자화상'을 미국 미술관 최초로 사들인 사건이 두 작가를 한 줄로 잇는다.
흥미로운 사실 Did You Know
출처 보기 (17)
- https://en.wikipedia.org/wiki/Henri_Matisse
- https://en.wikipedia.org/wiki/The_Window_(Matisse)
- https://dia.org/collection/window/53668
- https://dia.org/collection/coffee-53667
- https://dia.org/collection/poppies-53671
- https://www.wikidata.org/wiki/Q5589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_Fen%C3%AAtre,_par_Henri_Matisse.webp
- https://www.wikiart.org/en/henri-matisse/the-window-1916
- https://www.wikiart.org/en/henri-matisse/coffee-1916
- https://en.wikipedia.org/wiki/Large_Reclining_Nude
- https://artbma.org/objects/large-reclining-nude/
- https://en.wikipedia.org/wiki/Fauvism
- https://en.wikipedia.org/wiki/Woman_with_a_Hat
- https://en.wikipedia.org/wiki/Dance_(Matisse)
- https://en.wikipedia.org/wiki/Jazz_(Henri_Matisse)
- https://en.wikipedia.org/wiki/John_Russell_(Australian_artist)
- https://www.romeing.it/impressionism-and-beyond-masterpieces-from-the-detroit-institute-of-arts/